[ 함동정월류 가야금 산조에 대한 짧은 소개 ]

 이 산조의 모태가 된 것은 최옥산의 가락이다. 그의 호적명은 최옥삼이며, 보통

최막동이라고도 불렀다. 그는 김창조(1868-1919)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고

전한다. 농사도 지은 적이 있는 최옥산은 늘 하루 일과가 끝나면 손을 깨끗이 씻

고 한바탕을 탔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는 키가 크고 힘이 좋았으며, 그러기에 그가 연주하는 가야금줄은 다른 사람이

만질 수 없을 정도로 팽팽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의 산조는 지금도 줄을

팽팽하게 죄고 조금 낮게 조율하고 타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다른 산조에 비해서 묵직하면서 점잖은 편이다. 그러나 농현을 깊게

할 경우에는 매우 깊은 감정이 배어 나오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른 산조의 경우

중중모리가 계면조로 된 점에 비해, 이 산조에서는 우조의 힘과 기가 느껴진다.

특히 자진모리에서는 긴박감이 느껴지는데, 수천 마리의 말이 자갈길을 달리는

연주하라는 얘기도 전해온다.

 

  1917년 8월 23일 태어난 함동정월은, 열두살 되던 시절에 광주권번에 들어가

전통예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재기와 미모가 뛰어났던 그는, 가야금 병창 가곡 등

에서 두루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다. 원래의 이름은 함금덕인데, 동정월(洞庭月)이

란 예명은 이후 목포권번에서 얻게 된 예명이다. 그는 결혼과 생활고 때문에 오랫

동안 음악계를 떠났었다. 그러다가 1960연대 말 고수 김명환과 만나 함께 살면서,

이 최옥산의 가야금 가락을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1980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의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979년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에 심리적인 불안정 및 현실에

대한 불만 등으로 해서 말년에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1994년 10월 12일, 향년 77세로 타계했다.

 

   과거, 어린 이영신이 박귀희선생의 댁에서 지내며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시절, 박귀희와 함동정월의 사이는 각별했다. 함동정월이 어려

웠던 시절에 박귀희선생이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영신에게 배워

오도록 했고, 이로 인해서 이영신은 함동정월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